종로단상.

2009/05/06 13:53 공상/단문
4월 7일 낮에 종로를 따라 차를 타고 가다가 생각한 것.

  종로를 따라 차를 타고 간다. 며칠 전만 해도 무척 추웠는데 봄이 오려나, 날씨가 뜨뜻미지근하다. 불쾌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검은 자동차 안을 달구고 있다. 오늘따라 잡생각이 많이 든다. 고작 심부름하러 가는 길, 한 시간도 안되는 시간일텐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다.
  구청에서 종로로 접어드는 길목의 큰 빌딩들. 서울의 중심답게 현대적으로 디자인된 고층빌딩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 고층 빌딩들의 벌어진 간격을 메우고 있는건 시장과 같은 느낌의 작은 빌딩들이다. 구청 건물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 일제강점기 때 학교 건물로 지어진 구청 건물은 좀 덩치가 불어나긴 했어도 낡은 모습 그대로 고층빌딩 사이에 숨어있다. 뭐, 2010년 내로 신청사를 건립할 계획이라곤 하나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큰 빌딩을 짓고 서울을 세련되게 만드는게 높은 사람들의 목표인가 보다.
  구청 앞에는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는 건물들과 철거를 위한 가림막이 늘어서 있다. 간간히 음식점 이전을 알리는 안내판도 붙어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재개발을 통해 울고 웃겠구나.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번쩍거리는 고층빌딩을 그 자리에 살짝 대입해본다. 서울의 심장은 또 한 발짝 하늘과 가까워질 것이다- 정작 사람은 땅에서 살아가는 동물인데.
  보신각을 지나쳐 종로를 따라 세운상가 쪽을 향한다. 수많은 세월이 녹아있을 낡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엔 거의 와 본 적도 없는데도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과연 10년후에 이 풍경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지금의 풍경을 머릿속에 새겨두자. 이제 왼쪽으로 YMCA 빌딩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피아노 거리가 보인다. 며칠 전만 해도 멀쩡히 지나다녔던 거리는, 피아노 건반이 다 뜯겨 나가 흉물스런 모습이다. 옆에서 돈 부어서 피아노 거리 만든다고 공사할 땐 언제고 이젠 다시 다 뜯어내냐는 말을 하신다. 깔끔하지 못하게 길에 나와 있는 노점상들을 모두 이 거리에 배치하여 세련된 길을 만들겠다는게 주 목적이라는 것 같은데, 계획대로 잘 될지는 잘 모르겠다.
  머리 큰 괴물을 연상시키는 낙원상가를 지나, 종묘공원이 보인다. 행사라도 있는지 할아버지들이 여럿 모여 뭔가를 하고 있다. 앞에선 북핵반대를 외치는 선전이 들려온다. 더운 날씨에 테이프라도 늘어졌는지 우스꽝스러운 소리가 되었다. 저 앞에는 반 토막이 나서 흉물스럽게 내부를 다 드러내고 있는 세운상가 철거 현장이 보인다. 문득 어떤 기사에서 제기하였던 의문이 떠오른다. '꼭 청계천을 따라 세련된 건물만 있어야 하는가?'
  짧은 시간동안 종로를 지나면서 이 곳은 참 역설적인 곳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 곳에는 대통령부터 가장 서민적인 사람까지 온갖 사람이 살고 있고, 세련된 고층 빌딩과 정부 건물이 있으며, 재개발만 기다리고 있는 오래된 상가가 많다. 젊음이 넘치는 도시의 중심이지만 공원엔 노인이 넘쳐나고, 낮에는 사람이 들끓지만 밤에는 도심공동화 현상이 일어난다. 낙원상가를 따라 포장마차들이 생겨나고, 성적 소수자의 밤이 된다. 하지만 이런 역설적인 면이 종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모두 획일적인 모습으로 바꿔버리려 한다면 그건 종로를 안식처로 삼아온 소수자에 대한 모독 아닐까? 애초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하는지가 의심스럽긴 하다.

  며칠 전 주말에 집에 다녀온 사이에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서는 노동절과 촛불 1주년 집회가 열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 집회는 경찰에 의해 원천봉쇄 당했다고 한다. 제대로 일어나지도 않은 집회를 '불법'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과 공권력을 동원해 봉쇄하는 현실. 왜 사람들이 이런 집회를 벌이고 있는건지 알기나 할까?  100년간 서민의 애환이 얽혀있는 종로는 사라지고, 그들은 영화를 누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종로의 정취나 그리움, 서민의 애환 따위는 모를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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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6 13:53 2009/05/0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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