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상태.

2009/11/25 13:39 잡담
요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일단 작은 자극에도 감정이 쉽게 움직이는 것이, 이게 바로 '가을을 탄다'는 건가 싶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난 생각보다 여린 감성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남 앞에서 그걸 표현하는게 서툴고 그런거지. 지금도 표현은 서툴다. 다만 억제되어왔던 감정 표현이 이젠 흘러 넘쳐서 남에게 폐가 되는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언젠가 들은 요가 수업에서, 원정혜 교수님이 항상 강조했던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원래 주변 상황에 쉽게 움직이는 거 같다. 칭찬 한 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는가 하면, 마음에 걸리는 소리에는 갑자기 우울해지기도 하고. 이 감정의 흐름을 관조하고 실제로는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관찰하면 진짜 내 본질의 위치를 알 수 있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했는데, 수업을 들을 때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런데 이 때 스쳐지나갔던 말들이 요즘 다시 떠오르고 있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마음 수련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과 함께.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갈진 모르겠지만, 또 어찌 보면 내게 있어 이것도 흥미로운 변화가 아닐까 싶다. 다치고 깨지고 닳고. 상처입은 그 자리는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날 것이다. 스스로를 붙잡으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겠지만, 한동안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겠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내게도 깨달음과 성장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11/25 13:39 2009/11/25 13:39

책을 읽자.

2009/11/13 11:49 잡담
요즘 책을 읽자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적극적으로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생각난김에, 최근에 읽은 책과 읽고 있는 책을 간단히 소개해보자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읽은 책

그건, 사랑이었네 / 한비야 저

  한비야씨가 최근에 낸 에세이집이다. '중국견문록'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나름 재밌게 읽었었는데, 역시 이 책도 즐겁게 읽혔다. 한비야씨의 책은 모두 저자의 개성을 매우 강하게 담고 있다. 항상 '아,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구나' 하는 그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이 책도 역시 그랬다.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나는 에너지를 여기저기 발산하고 다니는 모습은 그대론데, 그래도 이전 책들과는 달리 이 책에선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상당히 들어있어 즐겁게 읽었다. 한비야씨 말로는 기존에 자신이 썼던 책들과는 달리 그냥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단다. 이전 한비야씨 책을 즐겁게 봤던 분들, 그리고 수필 읽는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난 이 책을 추천하겠다.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 헤르만 헤세 저 / 김지선 역

  산지는 꽤 된 책인데 읽지 않고 있었다. 사실 집에 뒤져보면 사 놓고 안 읽은 책이 많이 쌓여있을텐데, 빨리 그 책들을 청산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새 책을 사게 되는 그런 심리가 있다. 이 책은 교보문고에서 지나가다가 언뜻 눈에 띄어서 첫 글을 읽었는데 마음에 들어서 사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사실 '독서의 기술'을 논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헤세가 독서라는 취미부터 시작하여 책 수집, 글쓰기, 문학 등 책과 독서에 관한 짧은 기고문이나 수필을 모아놓은 하나의 단편집이다. 원래 독일의 한 신문사 편집장이 글을 엮었고, 원제는 '책의 세계'이다.
  원제가 나타내주듯, 이 책은 '책의 세계'를 바라보는 헤르만 헤세의 시각을 담고 있다. 글 하나하나에서 헤세의 글, 책, 문학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데 꽤나 즐겁다. 최근에 책도 별로 보지 않고 의미없이 시간 때우는 독서만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예전에 느꼈던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또, 헤세의 글투가 나와 잘 맞는지 술술 읽히고 한 문장 한 문장에서 살아있다는 감각이 느껴져서 읽을 때 더없이 행복했다.
  독서를 왜 하는지 그 당위성이 부족하다 싶을 때, 내가 의미없는 독서를 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 경우 이 책을 보고 헤르만 헤세의 팬이 되어버렸다.


읽고 있는 책

요양객 / 헤르만 헤세 저 / 김현진 역

  나는 복잡하고 치밀한 장치를 보고 해석해야 하는 소설보다는 그 사람의 철학이 더 거칠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필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마침 생일이라 친구들에게 헤르만 헤세의 저작물을 선물받고 싶다고 광고를 했더니 한 친구가 이 책을 줘서 즐겁게 읽고 있다.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은 '방랑', '요양객', '뉘른베르크 여행', 총 세 작품을 담고 있다. '방랑'은 모두 읽었는데, 헤세가 시민, 혹은 교양인으로서의 삶을 잠시 접어두고 자연을 벗삼아 방랑하던 때에 쓴 수필연작이다. 역시나 멋진 글솜씨로 자신이 보고 느끼고 사고했던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지금은 '요양객'을 읽고 있는데 최근엔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환경이 안 만들어져서 좀 쉬고 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헤세의 생각 흐름은 굉장히 독특하지만 멋지고, 그 흐름을 따라 흘러가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한 문장을 읽고 백 가지 생각을 하고- 그의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종류는 아니지만,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가 된다.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 칼 폴라니 저 / 홍기빈 역

  역자인 홍기빈씨가 쓴 서문에서 주류 경제학자들을 고대의 제사장에 비유한데서 상당히 감명받았다. 친구가 쓴 감상을 보고 원문이 읽고 싶어 빌렸는데, 아직 제대로 시작하진 못했다. 저자는 기존의 주류 경제학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는 문제가 있으며 좀더 사회와 문화에 경제가 연결된 방식을 실질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자본주의는 상품화 해서는 안 되는 것들 -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는 노동능력, 사회적 신뢰를 의미하는 화폐 등 - 을 상품화 했기에 근본적으로 불안정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다른 대안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본격적인 내용은 이 책을 모두 읽고 올려보도록 하겠다.

작품을 통한 현대음악의 흐름 / 백병동 저

  일견 전공서적처럼 보이는 책이고 읽지도 못하는 악보가 잔뜩 실려있지만, 의외로 클래식에 어느정도 관심만 있다면 즐겁게 읽어볼만하다. 교보문고에서 음악서적쪽 코너에 갔다가 '백병동 평전'이 있어 잠시 들춰봤는데, 상당히 우리나라 현대음악사에 기여하신 분인 듯 했다. 결국 이 책을 사는데 주저함이 좀 줄어들어 사게 되었는데, 역시 사길 잘 한것 같다.
  현대음악 - 저자는 현대음악Modern Music보다는 동시대음악Contemporary Music이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어하지만 - 의 민감한 흐름을 예술사 전반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특히 미술이나 문학 사조, 문화적 변혁, 그리고 사회-정치적 변화를 잘 연결지어 읽기 좋게 되어있다. 매년 발표된 주요 곡과 그 곡들의 발췌 악보가 수록되어있고, 그 곡들이 갖는 의미를 꼼꼼하게 서술하여 이해를 돕는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고 나서 들어봐야할 곡 목록이 마구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얼터너티브 드림 / 복거일 외 9인 저

  이건 사실 산 지 몇 년 된 책인데 아직도 꾸물대고 있다. 한국 SF 작가 10명이 쓴 십인십색의 SF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한 3개쯤 읽은 상태로 답보상태인데, 각 글마다 편차가 커서 좋다 나쁘다를 말하기는 좀 곤란하다. 이영도씨의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는 상당히 좋았다.


읽을 예정인 책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저 / 박병덕 역

  역시 생일선물로 받은 책이다.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지만, 헤세의 책이라 기대중이다. '요양객'을 모두 읽으면 시작해볼 예정이다. 다만, 단편의 모음이 아니라 날을 잡아 하루에 읽어야할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 / 로베르 주르뎅 저 / 최재천 역

  음악 인지에 관한 책이다. 아슬아슬하게 교양과 전문서적의 경계에 있는 책이라고 들었는데, 실제 실험 결과 등도 들어있어 꽤나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음, 화음, 선율, 박자를 인지하는 과정에 이어 연주, 작곡, 감상을 할 때 일어나는 인지과정으로 점점 그 범위를 넓혀간다. '현대음악의 흐름'을 모두 읽으면 이 책을 읽을 예정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11/13 11:49 2009/11/13 11:49

스킨 변경.

2009/11/10 12:07 잡담
오랜만에 스킨을 바꿔보았다. 기존에 쓰던 폭이 넓은 스킨은 문단이 길어지면 읽기 힘들어지는 단점이 있어, 이번에는 폭이 비교적 좁은 스킨을 찾아서 사용하였다. 일단 한 눈에 잘 들어오고 사이드바나 코멘트 등이 잘 배치되어 있고 정돈된 느낌이라 마음에 든다.

글을 자주 올리는 건 아니지만, 잊혀질만하면 하나씩 글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블로그를 하는 상태이면서도 하지 않는 상태랄까, 의식은 '블로그를 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는 하지 않는거나 다름없는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이젠 글을 좀 더 자주 써볼까 한다.

예전에 올린 글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제 몇 번짼지 모르겠다. 블로그 뿐만이 아니라 운동 등의 많은 일을 시작할 때, 결심은 열심히 해놓고 결심만큼 행동이 따라가지 못하다가 급기야는 결심을 언제 했었냐는 듯 싹 사라져있다. 그래서 저번에 블로깅을 재개할 때는 블로깅을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었는데, 결심을 하든 말든 영향을 주지 않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내 블로깅이 얼마나 가는지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해보기로 했다. 과연 이런 생각을 했단 것이 나중에 기억날진 모르겠지만 기억나면 항상 왜 이렇게 블로깅의 종말이 오는 것인지 원인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D

라는 문단이 있는데 역시나 그 객관적인 입장은 어디로 달아나고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블로그를 열어놓을 뿐이다. 친우가 블로그를 열심히 하고 있어 나도 블로그에 글을 좀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인데, 이번에야말로 결심을 하든 말든 영향이 안 오더라도 결심을 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끊임없는 자각을 갖도록 노력해봐야지. 사람 습관이란게 20일이면 정착된다고 하니(근거는 없다) 바꾸기 쉬운듯 하면서도 어려운 기간인데, 이 정도 기간동안 자각하면 자연스레 생활에 녹아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론은, 스킨 마음에 들고 글 열심히 쓰겠다는거다. 특히 스킨 폭이 좁아 짧은 글도 왠지 길게 느껴지니 얼마나 좋은가! 기존에 갖고 있던 짧은 글을 블로그에 투척하는데 대한 거부감을 이번 스킨을 통해 날려버리는 기회가 되겠다. 이 스킨은 아무래도 오래 쓰게 될 것 같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11/10 12:07 2009/11/10 12:07
음악의 수학적 구조

이전에 '수학적 구조'를 사용했다는 음악에 관해 비판을 올린 적이 있다. 현재 내 생각은 상당히 바뀌었고, 그래서 이 글을 올린다.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의 최대의 차이는 일종의 '목적성'에 있다. 고전음악이 자연에 가까운 소리, 아름다운 소리 등 일종의 절대기준이 있는 미를 추구했다면 현대음악은 작곡하고 연주하고 듣는 그 능동적인 행위들에 목적이 있다. 미를 추구하기 보다는, 각자가 의도를 담고 행위를 수행하여 기존의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소통을 시도한다. 이것은 음악 뿐만이 아니라 문학, 미술 등 모든 예술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음악에서는 수많은 도구가 사용된다. 작곡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려 했고, 현대에 와서 그 갈래가 나뉘어지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작게는 불협화음을 음악에 활용하는 것 부터, 12음기법, 무조음악, 선율 파괴, 음색에 대한 접근, 불협화음의 활용, 음괴, 복잡한 박자와 리듬, 악기 고유 기능의 파괴, 새로운 악기를 도입하거나 만들어 쓰는 것, 전자음의 활용, 우연성의 활용 등 주변의 모든 소리를 음악에 반영시킬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더 이상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쓸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단지 장르의 문제이며, 모든 소설가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듯 작곡가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음악이라는 형태로 담을 뿐이다.

장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자. 분명 클래식이나 대중음악이나 뭐 어떤 장르던 단지 음악일 뿐인데, 왜 사람들은 클래식을 듣기 어려워하는 걸까? 그건 어떻게 보면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거리감 때문이고, 사회에 '클래식이란 어려운 것이다'라는 근본 인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듣고 즐기고 감동했다면 그걸로 좋은 것 아닐까? 스스로 대화하고 소통하고 느낄 수 있는 것에 더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은 좀 더 대중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벽을 허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들에게 익숙하진 않지만 이런 새로운 음악을 좀 더 접해보려 한다면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본론으로 돌아와서, 음악에 수학적 구조를 응용했다고 하는 것은 현대음악의 새로운 시도일 뿐이다. 수학을 이용하여 작곡가의 의도가 들어있지 않은 곡이 나오던, 들어있는 곡이 나오던 그 기법을 시도한 것 자체로 이미 충분히 가치있다. 또한 청취자나 연주자 입장에서 작곡가가 수학적 기법을 사용했건 아니건 그것이 중요하겠는가? 그 음악을 통해 충분히 사유하고 스스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닌가? 또한 '수학적 기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나 그 구조를 파악하는데서 다른 유희를 발견할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부탁하는 바다. 음악을 듣고 즐기고 느끼고, 만들자. 주변의 모든 소리가 음악의 소재이니 스스로의 발걸음 소리에서 음악을 발견하게 될 지 누가 알겠는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11/03 11:35 2009/11/03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