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2009/12/14 10:38 잡담
어제 합창단 연습에 갔다. 이제 3년쯤 되었으면 잘 될 법도 한데, 역시 아직도 악보를 초견으로 부르는 건 피아노 반주가 있더라도 벅찬 일이더라. 음은 그럭저럭 읽히는데 박자 읽는 건 아직도 서툴다. 그나저나, 연습이 끝나고 간 뒷풀이 자리에서 정말 감격스런 소리를 들었다. 연습할 때 내 표정을 봤는데 너무나도 행복해보이고, 즐거워 보였다고. 솔직히 연습하면서 악보도 잘 안 읽히고 짜증도 많이 나는데 공연도 아니고 연습때 그런 표정으로 노래하는 사람은 처음 본 것 같다고.
노래할 때 표정은 어떻게? 다들 웃어요!
-2008년 학생지휘자
3년간 참여했던 학교 합창단. 그리고 작년의 정기공연. 문득 머리속을 스쳐가더라. 내 2년 반의 합창단 생활은 정말 보람찼고, 헛되지 않았다. 내가 비록 발성이 썩 좋지도 않고 악보를 잘 읽는 편도 아니지만,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할 수 있다는 것. 가장 소중한 것을 얻었다. 어떤 노래를 부르더라도 몰입할 수 있고, 지휘자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노래할 수 있다는 것. 그래. 아마도 나는 평생 노래를 하게 될 것 같다. 합창이든 아카펠라든,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에 파묻혀 살아갈 내 미래를 꿈꾸며,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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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10:38 2009/12/14 10:38

단상.

2009/12/10 11:17 독백
실재에 관한 고찰. 자신의 실재를 인지하는 것 보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대상인 주변 환경, 혹은 주위 사람들이 나를 '인지하는 행위'를 통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립하려 함. 다만 이 경우 주변 사람들이 내 존재를 무시하는 등 거부하게 되면 스스로의 실재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결과를 낳고, 따라서 스스로의 존재에 회의감이 들게 됨.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실재하고, 감각이 실존한다는 것을 '종교적'으로 라도 믿고 인정할 필요가 있음. 주변을 인식하는 이 모든 것이 실재하지 않는 단순한 전기자극이라 할 지라도, 스스로가 사고한다는 그 사실은 변하지 않고 스스로가 인지할 수 밖에 없음. 데카르트가 한 말 대로, cogito ergo su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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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0 11:17 2009/12/10 11:17

단상.

2009/12/09 20:24 독백
글을 쓸 때 왜 항상 진취적인 듯 보이는 생각으로 생각의 흐름을 종결시키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슬픈 결론은 나를 너무 슬프게 하기 때문에 제어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좀 즐거운 결론을 내면 생각을 쉽게 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만, 또한 그 만큼 현명한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마지막에 거는 최면은, 나는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행복하다. 내가 실존하는지 아닌지는 아직 실감할 수 없지만, 행복감, 그 화학적 반응 만큼은 마약처럼 내 몸을 잠식하고 있으니까 그걸로 된거다. 스스로의 행복에 건배. 즐겁게 자도록 하자.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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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9 20:24 2009/12/09 20:24

블로그에 쓰는 글.

2009/12/09 01:16 잡담
내가 나를 표출하고 있는 공간은 총 3개다. 이곳 블로그와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그리고 학교 내부망의 개인 게시판. 이 세 창문을 통해 나는 내 자신을 외부에 알리고 있는거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이 세 개는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 글의 느낌이나 문체도 다르고, 양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다.

내부망의 개인 게시판의 경우 짤막짤막한 글과 어느정도 길이가 있는 글이 혼재되어 있다. 텔넷이라는, 우리 더하기 조금 윗세대에서나 정겨운 환경에서 손쉽게 글을 쓸 수 있어선지 짤막한 생각이나 정리가 안 된 공상 같은 것을 쓰고 있다. 어떨 땐 두 줄에서, 2~30줄이 넘는 긴 글까지. 그래서 이 게시판은 상당히 유용하지만, 특정 그룹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다는데 문제점이 있다.

미니홈피의 경우에는 다이어리 기능만 사용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짧은 글을 쓴다. 그래서 일기의 느낌으로, 느꼈던 감정이나 불현듯 스쳐 간 생각을 충동적으로 올리고 있다. 예전에는 불편해서 많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이어리 기능 정도는 쓸만한 것 같다. 다른 기능은 아주 안 좋기 때문에 여전히 쓰지 않지만.

그리고 블로그다. 사실 블로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여기가 블로그이기도 하고, 내게 중요하지만 아직 잘 쓰지 못했던 매체이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블로그에는 제대로 정리된 글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글이 게시되고, 블로그 사이트에 발행되는게 그 이유가 아닐까 하는데, 그래서 개인적인 글을 올리고 싶을 때는 네이버 블로그가 더 적합한 듯 하다.

원래 블로그란건 개인 미디어로서 처음 등장하였다. 다만 한국 특성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고, 그래서 싸이월드의 미니홈피가 각광받았고 네이버 블로그도 인기를 얻게 되었다. 처음에 블로그를 일종의 개인 언론으로 받아들여 시작했지만,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더 많다. 실제로 내 블로그 글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이야기지, 특별히 주제도 없고 개인 미디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는 쓰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내가 실력만 된다면 구조를 유효적절하게 뜯어고쳐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을텐데 아쉽다. 요즘 매일 무슨 일을 했는지를 기록한다. 그 와중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두고 가끔 혼자 읽어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이 글을 좀 친한 이들이 보면 어떤 반응을 할까,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매우 개인적인 생각이고 전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블로그에 옮기기엔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블로그는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인터넷 상에서 '개인적'인 공간은 개인적이지 않고, 외려 공개적이다. 하지만 이런 공개적인 곳에서도 적절한 벽만 유지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껏 내가 블로그를 사용해온 방식도 그런 방식일테고. 그렇다면 좀 더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맘대로 글을 올려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스스로 규정지어버린, 내 블로그의 기존 성격과는 다른 글들을 조만간 올려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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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9 01:16 2009/12/09 01:16

인권 개념.

2009/12/02 15:14 잡담/개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격월 발행 잡지 '인권'에서 발췌.
자칫 '내 것을 악착같이 찾아 먹는' 경쟁의 논리가 경제성장을 위한 정당화 논리로 활용되고, 그것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조차 더 악화시킨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다시 말해,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 뒤에 함축된 경제주의적 인권관과 법질서 위주의 소극적 자유관이 고전적 인권 개념이라면, "서로 도우며 나눕시다"라는 연대의식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소극적-적극적 자유관의 적절한 배합이 민주적 인권 개념이라고 할 것이다.
읽고 있는 칼 폴라니의 글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겉보기에 시장경제체제는 완전해 보이지만 실상은 경제체제가 사회체제를 좌지우지하는 형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며, 실제로는 결코 완전한 체제가 아니다. 따라서 국가가 개인의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보장하고 법질서만 엄수하게 하는 것을 진정한 인권으로 보는 것은 불합리하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권 보장을 위해 나서야 한다. 국가는 민주적 인권관을 유지한 채로 시민 활동에 간섭하지 않을 의무, 적극적으로 인권 보장을 위해 나서야할 의무를 상황에 맞춰 잘 배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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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15:14 2009/12/02 15:14
최근에 교보문고에 갔다가 '백병동 연구'와 '작곡가 강석희와의 대화'를 발견하고 둘 중 무얼 살까 고민하다가 이 쪽을 택했다. 일단 좋아하는 작곡가 진은숙의 스승님이기도 하고, 언뜻 책을 넘겨보면서 본 강석희의 작곡에 대한 자세나 입장이 내 마음에 꼭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작곡가 강석희와 대화를 나눈 내용을 고스란히 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읽기도 편하고, 강석희씨의 생각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어 상당히 좋았다.

강석희는 음악에서 다이내믹 등을 이용해 음을 질을 바꾸는 등의 효과성 요소를 배제하고 온전히 각 음을 추상적인 요소로 생각하여 철저하게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절대음악을 추종한다. 그래서 책 여기저기서 표제음악이나 구체적인 내용을 묘사하는 음악을 꺼려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역시 예술가답게 자신만의 세계를 굳건하게 가지고 있으며 살짝 고집센 할아버지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고집이 이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본문에서 강석희의 생각을 가장 잘 대변해준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조금 발췌해보았다.

작곡가가 작곡한다는 것은 순수한 음과의 대결을 의미한다. 소리에는 어떤 의미도 없기 때문에 차갑고 냉정하다. 이 소리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 작곡하는 행위인 것이다. 내가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을 믿는 것도 물자체(Ding an sich)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음 그 자체(Ton an sich)는 소리에 의미가 없음을 말한다. 그렇지만 음악의 신비함은 그렇게 이성적으로 작곡되었는데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입장에 있다. 다만 어떤 음렬이나 어떤 음악적 구조가 감정이나 심리 상태에 영향을 어떻게 주는지 그런 생물학적이고 임상적인 부분에도 좀 더 관심이 있다는게 다른 점이랄까. 기본적으로 뇌가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그리고 아직까지도 음악의 형태는 추상화된 음의 집합이지 단순히 소리의 집합이 아니다. 따라서 먼저 추상화된 기호열로서 음악에 접근해야하며, 이 기호열의 규칙을 적절히 결정하는게 물리 법칙과 뇌의 음인지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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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01:33 2009/12/02 0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