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2010/02/26 16:03 잡담
블로그를 따로 운영중이다.
이 블로그는 유통기한이 지나면 자동 폐쇄될 예정.
텍스트큐브 기반을 버린다는게 좀 아깝긴 하다. 퇴행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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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6 16:03 2010/02/26 16:03

단상.

2009/12/14 10:38 잡담
어제 합창단 연습에 갔다. 이제 3년쯤 되었으면 잘 될 법도 한데, 역시 아직도 악보를 초견으로 부르는 건 피아노 반주가 있더라도 벅찬 일이더라. 음은 그럭저럭 읽히는데 박자 읽는 건 아직도 서툴다. 그나저나, 연습이 끝나고 간 뒷풀이 자리에서 정말 감격스런 소리를 들었다. 연습할 때 내 표정을 봤는데 너무나도 행복해보이고, 즐거워 보였다고. 솔직히 연습하면서 악보도 잘 안 읽히고 짜증도 많이 나는데 공연도 아니고 연습때 그런 표정으로 노래하는 사람은 처음 본 것 같다고.
노래할 때 표정은 어떻게? 다들 웃어요!
-2008년 학생지휘자
3년간 참여했던 학교 합창단. 그리고 작년의 정기공연. 문득 머리속을 스쳐가더라. 내 2년 반의 합창단 생활은 정말 보람찼고, 헛되지 않았다. 내가 비록 발성이 썩 좋지도 않고 악보를 잘 읽는 편도 아니지만,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할 수 있다는 것. 가장 소중한 것을 얻었다. 어떤 노래를 부르더라도 몰입할 수 있고, 지휘자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노래할 수 있다는 것. 그래. 아마도 나는 평생 노래를 하게 될 것 같다. 합창이든 아카펠라든,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에 파묻혀 살아갈 내 미래를 꿈꾸며,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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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10:38 2009/12/14 10:38

블로그에 쓰는 글.

2009/12/09 01:16 잡담
내가 나를 표출하고 있는 공간은 총 3개다. 이곳 블로그와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그리고 학교 내부망의 개인 게시판. 이 세 창문을 통해 나는 내 자신을 외부에 알리고 있는거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이 세 개는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 글의 느낌이나 문체도 다르고, 양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다.

내부망의 개인 게시판의 경우 짤막짤막한 글과 어느정도 길이가 있는 글이 혼재되어 있다. 텔넷이라는, 우리 더하기 조금 윗세대에서나 정겨운 환경에서 손쉽게 글을 쓸 수 있어선지 짤막한 생각이나 정리가 안 된 공상 같은 것을 쓰고 있다. 어떨 땐 두 줄에서, 2~30줄이 넘는 긴 글까지. 그래서 이 게시판은 상당히 유용하지만, 특정 그룹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다는데 문제점이 있다.

미니홈피의 경우에는 다이어리 기능만 사용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짧은 글을 쓴다. 그래서 일기의 느낌으로, 느꼈던 감정이나 불현듯 스쳐 간 생각을 충동적으로 올리고 있다. 예전에는 불편해서 많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이어리 기능 정도는 쓸만한 것 같다. 다른 기능은 아주 안 좋기 때문에 여전히 쓰지 않지만.

그리고 블로그다. 사실 블로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여기가 블로그이기도 하고, 내게 중요하지만 아직 잘 쓰지 못했던 매체이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블로그에는 제대로 정리된 글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글이 게시되고, 블로그 사이트에 발행되는게 그 이유가 아닐까 하는데, 그래서 개인적인 글을 올리고 싶을 때는 네이버 블로그가 더 적합한 듯 하다.

원래 블로그란건 개인 미디어로서 처음 등장하였다. 다만 한국 특성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고, 그래서 싸이월드의 미니홈피가 각광받았고 네이버 블로그도 인기를 얻게 되었다. 처음에 블로그를 일종의 개인 언론으로 받아들여 시작했지만,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더 많다. 실제로 내 블로그 글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이야기지, 특별히 주제도 없고 개인 미디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는 쓰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내가 실력만 된다면 구조를 유효적절하게 뜯어고쳐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을텐데 아쉽다. 요즘 매일 무슨 일을 했는지를 기록한다. 그 와중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두고 가끔 혼자 읽어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이 글을 좀 친한 이들이 보면 어떤 반응을 할까,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매우 개인적인 생각이고 전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블로그에 옮기기엔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블로그는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인터넷 상에서 '개인적'인 공간은 개인적이지 않고, 외려 공개적이다. 하지만 이런 공개적인 곳에서도 적절한 벽만 유지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껏 내가 블로그를 사용해온 방식도 그런 방식일테고. 그렇다면 좀 더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맘대로 글을 올려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스스로 규정지어버린, 내 블로그의 기존 성격과는 다른 글들을 조만간 올려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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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9 01:16 2009/12/09 01:16

인권 개념.

2009/12/02 15:14 잡담/개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격월 발행 잡지 '인권'에서 발췌.
자칫 '내 것을 악착같이 찾아 먹는' 경쟁의 논리가 경제성장을 위한 정당화 논리로 활용되고, 그것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조차 더 악화시킨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다시 말해,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 뒤에 함축된 경제주의적 인권관과 법질서 위주의 소극적 자유관이 고전적 인권 개념이라면, "서로 도우며 나눕시다"라는 연대의식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소극적-적극적 자유관의 적절한 배합이 민주적 인권 개념이라고 할 것이다.
읽고 있는 칼 폴라니의 글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겉보기에 시장경제체제는 완전해 보이지만 실상은 경제체제가 사회체제를 좌지우지하는 형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며, 실제로는 결코 완전한 체제가 아니다. 따라서 국가가 개인의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보장하고 법질서만 엄수하게 하는 것을 진정한 인권으로 보는 것은 불합리하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권 보장을 위해 나서야 한다. 국가는 민주적 인권관을 유지한 채로 시민 활동에 간섭하지 않을 의무, 적극적으로 인권 보장을 위해 나서야할 의무를 상황에 맞춰 잘 배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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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15:14 2009/12/02 15:14
최근에 교보문고에 갔다가 '백병동 연구'와 '작곡가 강석희와의 대화'를 발견하고 둘 중 무얼 살까 고민하다가 이 쪽을 택했다. 일단 좋아하는 작곡가 진은숙의 스승님이기도 하고, 언뜻 책을 넘겨보면서 본 강석희의 작곡에 대한 자세나 입장이 내 마음에 꼭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작곡가 강석희와 대화를 나눈 내용을 고스란히 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읽기도 편하고, 강석희씨의 생각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어 상당히 좋았다.

강석희는 음악에서 다이내믹 등을 이용해 음을 질을 바꾸는 등의 효과성 요소를 배제하고 온전히 각 음을 추상적인 요소로 생각하여 철저하게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절대음악을 추종한다. 그래서 책 여기저기서 표제음악이나 구체적인 내용을 묘사하는 음악을 꺼려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역시 예술가답게 자신만의 세계를 굳건하게 가지고 있으며 살짝 고집센 할아버지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고집이 이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본문에서 강석희의 생각을 가장 잘 대변해준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조금 발췌해보았다.

작곡가가 작곡한다는 것은 순수한 음과의 대결을 의미한다. 소리에는 어떤 의미도 없기 때문에 차갑고 냉정하다. 이 소리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 작곡하는 행위인 것이다. 내가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을 믿는 것도 물자체(Ding an sich)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음 그 자체(Ton an sich)는 소리에 의미가 없음을 말한다. 그렇지만 음악의 신비함은 그렇게 이성적으로 작곡되었는데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입장에 있다. 다만 어떤 음렬이나 어떤 음악적 구조가 감정이나 심리 상태에 영향을 어떻게 주는지 그런 생물학적이고 임상적인 부분에도 좀 더 관심이 있다는게 다른 점이랄까. 기본적으로 뇌가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그리고 아직까지도 음악의 형태는 추상화된 음의 집합이지 단순히 소리의 집합이 아니다. 따라서 먼저 추상화된 기호열로서 음악에 접근해야하며, 이 기호열의 규칙을 적절히 결정하는게 물리 법칙과 뇌의 음인지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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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01:33 2009/12/02 01:33

요즘 상태.

2009/11/25 13:39 잡담
요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일단 작은 자극에도 감정이 쉽게 움직이는 것이, 이게 바로 '가을을 탄다'는 건가 싶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난 생각보다 여린 감성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남 앞에서 그걸 표현하는게 서툴고 그런거지. 지금도 표현은 서툴다. 다만 억제되어왔던 감정 표현이 이젠 흘러 넘쳐서 남에게 폐가 되는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언젠가 들은 요가 수업에서, 원정혜 교수님이 항상 강조했던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원래 주변 상황에 쉽게 움직이는 거 같다. 칭찬 한 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는가 하면, 마음에 걸리는 소리에는 갑자기 우울해지기도 하고. 이 감정의 흐름을 관조하고 실제로는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관찰하면 진짜 내 본질의 위치를 알 수 있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했는데, 수업을 들을 때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런데 이 때 스쳐지나갔던 말들이 요즘 다시 떠오르고 있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마음 수련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과 함께.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갈진 모르겠지만, 또 어찌 보면 내게 있어 이것도 흥미로운 변화가 아닐까 싶다. 다치고 깨지고 닳고. 상처입은 그 자리는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날 것이다. 스스로를 붙잡으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겠지만, 한동안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겠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내게도 깨달음과 성장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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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13:39 2009/11/25 13:39

책을 읽자.

2009/11/13 11:49 잡담
요즘 책을 읽자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적극적으로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생각난김에, 최근에 읽은 책과 읽고 있는 책을 간단히 소개해보자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읽은 책

그건, 사랑이었네 / 한비야 저

  한비야씨가 최근에 낸 에세이집이다. '중국견문록'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나름 재밌게 읽었었는데, 역시 이 책도 즐겁게 읽혔다. 한비야씨의 책은 모두 저자의 개성을 매우 강하게 담고 있다. 항상 '아,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구나' 하는 그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이 책도 역시 그랬다.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나는 에너지를 여기저기 발산하고 다니는 모습은 그대론데, 그래도 이전 책들과는 달리 이 책에선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상당히 들어있어 즐겁게 읽었다. 한비야씨 말로는 기존에 자신이 썼던 책들과는 달리 그냥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단다. 이전 한비야씨 책을 즐겁게 봤던 분들, 그리고 수필 읽는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난 이 책을 추천하겠다.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 헤르만 헤세 저 / 김지선 역

  산지는 꽤 된 책인데 읽지 않고 있었다. 사실 집에 뒤져보면 사 놓고 안 읽은 책이 많이 쌓여있을텐데, 빨리 그 책들을 청산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새 책을 사게 되는 그런 심리가 있다. 이 책은 교보문고에서 지나가다가 언뜻 눈에 띄어서 첫 글을 읽었는데 마음에 들어서 사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사실 '독서의 기술'을 논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헤세가 독서라는 취미부터 시작하여 책 수집, 글쓰기, 문학 등 책과 독서에 관한 짧은 기고문이나 수필을 모아놓은 하나의 단편집이다. 원래 독일의 한 신문사 편집장이 글을 엮었고, 원제는 '책의 세계'이다.
  원제가 나타내주듯, 이 책은 '책의 세계'를 바라보는 헤르만 헤세의 시각을 담고 있다. 글 하나하나에서 헤세의 글, 책, 문학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데 꽤나 즐겁다. 최근에 책도 별로 보지 않고 의미없이 시간 때우는 독서만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예전에 느꼈던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또, 헤세의 글투가 나와 잘 맞는지 술술 읽히고 한 문장 한 문장에서 살아있다는 감각이 느껴져서 읽을 때 더없이 행복했다.
  독서를 왜 하는지 그 당위성이 부족하다 싶을 때, 내가 의미없는 독서를 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 경우 이 책을 보고 헤르만 헤세의 팬이 되어버렸다.


읽고 있는 책

요양객 / 헤르만 헤세 저 / 김현진 역

  나는 복잡하고 치밀한 장치를 보고 해석해야 하는 소설보다는 그 사람의 철학이 더 거칠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필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마침 생일이라 친구들에게 헤르만 헤세의 저작물을 선물받고 싶다고 광고를 했더니 한 친구가 이 책을 줘서 즐겁게 읽고 있다.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은 '방랑', '요양객', '뉘른베르크 여행', 총 세 작품을 담고 있다. '방랑'은 모두 읽었는데, 헤세가 시민, 혹은 교양인으로서의 삶을 잠시 접어두고 자연을 벗삼아 방랑하던 때에 쓴 수필연작이다. 역시나 멋진 글솜씨로 자신이 보고 느끼고 사고했던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지금은 '요양객'을 읽고 있는데 최근엔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환경이 안 만들어져서 좀 쉬고 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헤세의 생각 흐름은 굉장히 독특하지만 멋지고, 그 흐름을 따라 흘러가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한 문장을 읽고 백 가지 생각을 하고- 그의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종류는 아니지만,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가 된다.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 칼 폴라니 저 / 홍기빈 역

  역자인 홍기빈씨가 쓴 서문에서 주류 경제학자들을 고대의 제사장에 비유한데서 상당히 감명받았다. 친구가 쓴 감상을 보고 원문이 읽고 싶어 빌렸는데, 아직 제대로 시작하진 못했다. 저자는 기존의 주류 경제학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는 문제가 있으며 좀더 사회와 문화에 경제가 연결된 방식을 실질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자본주의는 상품화 해서는 안 되는 것들 -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는 노동능력, 사회적 신뢰를 의미하는 화폐 등 - 을 상품화 했기에 근본적으로 불안정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다른 대안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본격적인 내용은 이 책을 모두 읽고 올려보도록 하겠다.

작품을 통한 현대음악의 흐름 / 백병동 저

  일견 전공서적처럼 보이는 책이고 읽지도 못하는 악보가 잔뜩 실려있지만, 의외로 클래식에 어느정도 관심만 있다면 즐겁게 읽어볼만하다. 교보문고에서 음악서적쪽 코너에 갔다가 '백병동 평전'이 있어 잠시 들춰봤는데, 상당히 우리나라 현대음악사에 기여하신 분인 듯 했다. 결국 이 책을 사는데 주저함이 좀 줄어들어 사게 되었는데, 역시 사길 잘 한것 같다.
  현대음악 - 저자는 현대음악Modern Music보다는 동시대음악Contemporary Music이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어하지만 - 의 민감한 흐름을 예술사 전반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특히 미술이나 문학 사조, 문화적 변혁, 그리고 사회-정치적 변화를 잘 연결지어 읽기 좋게 되어있다. 매년 발표된 주요 곡과 그 곡들의 발췌 악보가 수록되어있고, 그 곡들이 갖는 의미를 꼼꼼하게 서술하여 이해를 돕는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고 나서 들어봐야할 곡 목록이 마구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얼터너티브 드림 / 복거일 외 9인 저

  이건 사실 산 지 몇 년 된 책인데 아직도 꾸물대고 있다. 한국 SF 작가 10명이 쓴 십인십색의 SF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한 3개쯤 읽은 상태로 답보상태인데, 각 글마다 편차가 커서 좋다 나쁘다를 말하기는 좀 곤란하다. 이영도씨의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는 상당히 좋았다.


읽을 예정인 책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저 / 박병덕 역

  역시 생일선물로 받은 책이다.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지만, 헤세의 책이라 기대중이다. '요양객'을 모두 읽으면 시작해볼 예정이다. 다만, 단편의 모음이 아니라 날을 잡아 하루에 읽어야할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 / 로베르 주르뎅 저 / 최재천 역

  음악 인지에 관한 책이다. 아슬아슬하게 교양과 전문서적의 경계에 있는 책이라고 들었는데, 실제 실험 결과 등도 들어있어 꽤나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음, 화음, 선율, 박자를 인지하는 과정에 이어 연주, 작곡, 감상을 할 때 일어나는 인지과정으로 점점 그 범위를 넓혀간다. '현대음악의 흐름'을 모두 읽으면 이 책을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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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3 11:49 2009/11/13 11:49

스킨 변경.

2009/11/10 12:07 잡담
오랜만에 스킨을 바꿔보았다. 기존에 쓰던 폭이 넓은 스킨은 문단이 길어지면 읽기 힘들어지는 단점이 있어, 이번에는 폭이 비교적 좁은 스킨을 찾아서 사용하였다. 일단 한 눈에 잘 들어오고 사이드바나 코멘트 등이 잘 배치되어 있고 정돈된 느낌이라 마음에 든다.

글을 자주 올리는 건 아니지만, 잊혀질만하면 하나씩 글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블로그를 하는 상태이면서도 하지 않는 상태랄까, 의식은 '블로그를 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는 하지 않는거나 다름없는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이젠 글을 좀 더 자주 써볼까 한다.

예전에 올린 글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제 몇 번짼지 모르겠다. 블로그 뿐만이 아니라 운동 등의 많은 일을 시작할 때, 결심은 열심히 해놓고 결심만큼 행동이 따라가지 못하다가 급기야는 결심을 언제 했었냐는 듯 싹 사라져있다. 그래서 저번에 블로깅을 재개할 때는 블로깅을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었는데, 결심을 하든 말든 영향을 주지 않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내 블로깅이 얼마나 가는지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해보기로 했다. 과연 이런 생각을 했단 것이 나중에 기억날진 모르겠지만 기억나면 항상 왜 이렇게 블로깅의 종말이 오는 것인지 원인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D

라는 문단이 있는데 역시나 그 객관적인 입장은 어디로 달아나고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블로그를 열어놓을 뿐이다. 친우가 블로그를 열심히 하고 있어 나도 블로그에 글을 좀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인데, 이번에야말로 결심을 하든 말든 영향이 안 오더라도 결심을 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끊임없는 자각을 갖도록 노력해봐야지. 사람 습관이란게 20일이면 정착된다고 하니(근거는 없다) 바꾸기 쉬운듯 하면서도 어려운 기간인데, 이 정도 기간동안 자각하면 자연스레 생활에 녹아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론은, 스킨 마음에 들고 글 열심히 쓰겠다는거다. 특히 스킨 폭이 좁아 짧은 글도 왠지 길게 느껴지니 얼마나 좋은가! 기존에 갖고 있던 짧은 글을 블로그에 투척하는데 대한 거부감을 이번 스킨을 통해 날려버리는 기회가 되겠다. 이 스킨은 아무래도 오래 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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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0 12:07 2009/11/10 12:07
보편 설계Universal Design는 기존의 장애인을 위한 건물이나 제품 설계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설계를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기존의 장애인을 위한 제품은 대부분 비장애인이 사용하기엔 불편했고, 따라서 장애인만 사용하게 되어 단가가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편 설계를 통해 디자인된 제품은 누구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높고, 단가도 자연히 낮아지는 결과를 낳는다. 현재 많은 기업체들에서는 이 보편 설계의 정신에 따라, 장애인-비장애인을 넘어서서 남녀노소 모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고, 상품성과 시장성도 높은 설계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편 설계의 주원칙 일곱가지를 아래에 나열하였다.

1. Equitable Use (동등한 이용가능성)
  • 다양한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시장성이 있나?
2. Flexibility in Use (사용의 유연성)
  •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기호를 만족시키나?
3. Simple and Intuitive (단순직관성)
  • 사용자의 경험, 지식, 언어수준, 집중도와 상관없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가?
4. Perceptible Information (쉬운 정보 지각)
  • 주위 상황이나 사용자의 감각수준에 상관없이 정보를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가?
5. Tolerance for Error (오류 처리 능력)
  • 사고나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만들어내는 위험이나 잘못된 결과를 최소화 하는가?
6. Low Physical Effort (낮은 신체 능력 요구)
  • 사용하는데 드는 육체적/정신적 피로도가 낮은가?
7. Size and Space for Approach and Use (크기와 사용 공간)
  • 접근, 사용, 조작이 쉽고, 사용자의 신체 크기, 자세, 가동성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는 크기인가?

이 보편 설계의 개념은 제품의 종류, 설계의 종류와 관계 없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크롬, 파이어폭스, IE등의 브라우저 종류와 관계없이 접근성이 뛰어나고 사용이 편리한 웹 디자인을 하는 것도 일종의 보편 설계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경우 '웹 표준화'라는 방식을 통해 보편 설계를 추구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경우에도 이 개념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설계의 표준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위키피디아 Universal Design, Center for Universal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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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30 17:13 2009/07/30 17:13

모니터의 가독성.

2009/07/18 04:47 잡담
인쇄된 글과 블로그에 쓴 글을 읽을 때, 항상 가독성 차이를 느낀다.
따라서 모니터를 통해 보는 글을 편집할 때는 보통 인쇄하기 위한 글을 쓸 때와 다른 편집양식을 사용해야한다.
그렇다면 '어떤 편집양식이 가장 보기 편한가?'하는 질문을 할 수 있겠다.
먼저 아래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편집양식을 몇 개 열거해 보았다.

1. 들여쓰기의 유무
2. 문단과 문단 사이의 줄띄움 유무
3. 문장과 문장 사이의 줄넘김 유무
4. 글씨체와 글씨 크기, 글씨 색

글씨체와 글씨 크기, 글씨 색은 일반적으로 강조를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1~3에 변화를 주게 된다.
이전 글들의 양식을 비교해보고 읽어본 결과, 모니터를 통해 긴 문단을 읽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문단의 길이는 문장 개수와 상관없이 세로로 3~8줄이 적당하고, 문단과 문단 사이는 띄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단과 문단을 붙여쓸 경우 들여쓰기를 해야 하는데, 들여쓰기를 모니터에서는 확연하게 인식하기가 어렵다.

또, 이 글과 같이 문장과 문장을 줄을 넘겨서 구분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 같다.
이런 양식은 인쇄 매체에선 거의 사용하지 못하지만, 모니터위에서는 꽤나 가독성이 좋은 편집양식이다.
특히 생각을 단순 나열하거나 일종의 강한 논리적 흐름이 있지 않은 글을 표현할 때 좋다.

덧)
현대인들은 종이보다 모니터를 더 많이 보고 살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도 사람들은 열심히 글을 읽기 위해 종이를 소비하면서 살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전자 매체가 충분한 가독성을 갖추길 기대해 본다. 그 때엔 과연 종이의 종말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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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8 04:47 2009/07/18 04:47

재건축 단상.

2009/07/07 15:02 잡담
    여러 건물의 재건축을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재건축은 꼭 필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건물이 낡고 노후화되면 사람이 살기에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꼭 다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걸 통해 해소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주로 재건축을 옹호하는 쪽 사람들은 '효율성'에 기반한 주장을 하곤 한다. 도심지의 같은 면적의 땅에 작고 초라한 식당 건물이 있는 것 보다 높고 깔끔한 고층건물이 있는 것이 금전적으로 봐도 더 가치 있고, 공간 활용도 훨씬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효율성과 금전적 가치 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존 자본주의 논리는 이 두 가치를 쫓아 판단해왔고, 결국 다원화된 가치를 억압하고 하나의 잣대만을 들이대는 획일화된 사회를 낳지 않았던가. 애초에 이 논리를 따른다고 하면 역사적인 문화재에 드는 관리비용도 아까우니 다 부숴버려야 한다.
    만일 문화재는 관광자원으로서 큰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라면, 오래된 건물은 왜 관광자원으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지를 반문할 일이다. 근대와 현대의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우리의 예전 생활 모습을 담고 있는 낡은 건물에 얼마나 큰 역사적 가치가 있으며, 미래에 관광자원으로서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 지를 전혀 생각지도 않으면서 그저 보기 싫다고 다 밀어버리고 새로운 도시를 조성하여 관광상품화 하려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일이다. 이러다간 우리나라에 20년 이상 된 건물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최근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사업 중에는 '세운녹지축 조성사업'이 있는데, 기존 세운상가를 모두 철거하고 청계천변에는 첨단 건물로 변모한 상가를 만들고 잔디를 깔아 녹지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또, 종로구 일대의 재개발 대상 지역의 모든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고,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며 물길을 터서 청와대부터 종로구 일대로 이어지는 '녹지와 첨단 건물이 어우러진' 녹지축을 조성하여 관광상품화 한다는 게 그 구상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일단 기존에 주상복합으로 쓰여온 세운상가를 철거해서 그 자리에 녹지를 조성하면 원래 살던 사람들과 장사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피마골과 같은 명물화된 음식 거리를 철거하여 새 건물로 이주시킨다고 관광상품으로서 가치가 늘어날까? 기존에 세운상가와 같은 건물은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역사를 담고 있는데 이걸 무턱대고 철거하면 역사가 남아날까?
    이런 전시행정은 속히 그만두어야한다. 온고지신의 정신에 따라 기존의 것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임기 중에 보기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속은 곪든 터지든 내버려두는 식의 행정은 곤란하다. 또한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재건축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기존의 세입자에게 충분히 합리적인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애초에 건물이란건 그 내부에 사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높은 사람들이 보고 감상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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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7 15:02 2009/07/07 15:02
먼저 위키의 예를 살펴보자.

前文

悠久한 歷史와 傳統에 빛나는 우리 大韓國民은 3·1 運動으로 建立된 大韓民國臨時政府의 法統과 不義에 抗拒한 4·19 民主理念을 繼承하고, 祖國의 民主改革과 平和的統一의 使命에 立脚하여 正義·人道와 同胞愛로써 民族의 團結을 鞏固히 하고, 모든 社會的弊習과 不義를 打破하며, 自律과 調和를 바탕으로 自由民主的基本秩序를 더욱 確固히 하여 政治·經濟·社會·文化의 모든 領域에 있어서 各人의 機會를 均等히 하고, 能力을 最高度로 發揮하게 하며, 自由와 權利에 따르는 責任과 義務를 完遂하게 하여, 안으로는 國民生活의 均等한 向上을 基하고 밖으로는 恒久的인 世界平和와 人類共榮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子孫의 安全과 自由와 幸福을 永遠히 確保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年 7月 12日에 制定되고 8次에 걸쳐 改正된 憲法을 이제 國會의 議決을 거쳐 國民投票에 依하여 改正한다.

1987年 10月 29日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 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년 10월 29일


   우리 나라의 한자 교육은 했다 안했다를 계속 반복해왔기 때문에, 위의 한자 전문을 읽을 수 있는 우리 또래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나를 포함해서). 원래 이승만 시절엔 한자교육을 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한자 교육을 폐지하고 한글전용 노선을 따랐다. 이에 따라 신문도 점차 한자를 없애나갔고, 1988년에는 가로쓰기와 완전 한글전용을 내세운 신문 '한겨레'가 창간되었다. 그 이후 90년대에는 컴퓨터가 널리 사용되게 되면서 한글전용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일단은 한글전용의 승리라 할 수 있겠다.
  정부의 한자 교육정책이 계속 왔다갔다 하는 것은 그만큼 한글전용 주장과 국한문혼용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립의 중심에는 한글 학회와 全國漢字敎育推進總連合會(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가 있다. 한글 학회가 주장하는 한글전용의 주된 근거는 실용성에 있다. 한자를 섞어 쓰면 글의 가독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굳이 한자를 사용하지 않아도 단어의 뜻을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컴퓨터에서 문서를 작성할 때 국한문혼용보다 한글전용이 훨씬 편리하다는 점도 있다. 그에 반박하여, 한국어 단어의 약 70%가 한자 단어이기 때문에 한자를 아는 것은 글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한자 표기를 할 경우에 뜻의 혼동이 없어 잘 사용할 경우에 오히려 더 이해하기 쉬울 수 있다는 것이 국한문혼용 주장의 핵심이다.
  개인적으로, 한자를 교육하는 것을 의무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한자를 아는게 충분히 독해나 지식수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아직까지 많은 전문 분야에서는 한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반드시 배워야 할 학문 분야도 있다. 하지만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것이고, 지금 필요한 사람이 배우면 충분하지 굳이 한자를 필수교육으로 만들고 국한문혼용을 하여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필요는 없다. 인터넷이 나오고 채팅 언어가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유 한국어의 형태 파괴를 걱정했지만 그것은 파괴가 아니라 일종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한정된 문자 내에서 가능한 표현이 늘어났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이모티콘이나 초성체 같은 것은 문자를 이용하여 '대화'를 하기 위해 자동으로 진화된 언어라고 생각한다. 한자 사용도 똑같다. 필요한 사람은 배우고 지키면 되는거다.
  마찬가지로 한글전용에 그렇게 열을 올릴 필요도 없다. 단지 한자로 되어 뜻이 잘 통하지 않는 전문 용어를 한글 순화하는 것에는 찬성한다. 예를 들어 '함수'라는 용어는 유럽에서 중국에 전해진 용어가 음차를 통해 한자로 표현된 용어다. 이런 용어는 아무 뜻 없이 관용적으로 사용되었을 뿐인데, 한글을 통해 순화하고 뜻을 부여할 수 있다면 교육에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결국 쓰는 사람이 편하면 되는 거다. 지키고 싶은 사람은 지키고, 변하고 싶은 사람은 변하면 된다. 언어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그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다. 단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필요한 부분은 지키고 사용할 줄 알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닐까?

덧_ 그런 의미에서 라틴어를 배워보고 싶다. 한글에서 한자에 해당하는게 영어와 라틴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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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4 10:40 2009/04/14 10:40
Ignotum per ignotius라는 용어는 라틴어 구문으로,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란 뜻이다. 즉, 어떤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더 생소한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 위키피디아)

수학을 전공하다가 가끔 비 전공자에게 수학 개념을 설명해야할 때 이런 상황이 가끔 생긴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는 개념들을 가져와서 괜히 설명한다던가, 일반적인 경우로 문제를 바꿔서 더 어렵게 푼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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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5 18:45 2009/03/15 18:45

스킨에 대한 단상.

2008/10/25 08:42 잡담
저번에 스킨을 바꿨었는데 살짝 마음에 안 든다.
스킨을 직접 만들긴 귀찮은지라 스킨 게시판에서 좋은 스킨 찾아보다가 발견한건데, 심플하고 배색이 괜찮아보여서 선택했는데 제목과 글과 댓글의 경계가 좀 모호하고 내 기준으론 덜 깔끔해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 기회에 스킨을 바꿔버릴까? 잘 생각해보면 스킨을 한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 항상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도 귀찮다면서 집어치웠기 때문에. 이번에도 결국 때려칠 것이 자명하므로 답은 한가지. 다른 스킨 찾아보던가 이 스킨 수정해서 쓰던가 그냥 살던대로 살던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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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5 08:42 2008/10/25 08:42

스킨 변경.

2008/09/04 11:35 잡담
검정 바탕에 회색 글씨는 너무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스킨을 바꿔보았다.
직접 만들 엄두나 시간은 안 나서 스킨 업로드 페이지에서 하나 골라 봤는데, 마음에 든다.
커멘트와 트랙백 부분만 좀 더 깔끔하게 고쳤으면 하는데, 직접 고치자니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
그런 관계로, 한동안은 이 포맷을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D

요즘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로 블로깅 할 거리도 생기고 쓸 말도 많아졌다. 얼마나 갈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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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11:35 2008/09/04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