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별하지 않다.
다만 모든 사람이 별(別)함을 인정하는 사회였으면.
'독백'에 해당되는 글 25건
- 2010/01/03 특별함.
- 2009/12/10 단상.
- 2009/12/09 단상.(2)
- 2009/08/21 의자 두 개
- 2009/08/06 무제.
- 2008/12/02 2008년 11월 27일, 정적.(6)
- 2007/08/02 무지한 자신을 돌아보며.(2)
- 2007/07/19 블로그.(2)
- 2007/03/18 -_-(4)
- 2006/07/14 스팸 트랙백.(3)
- 2005/05/26 수학과 나 자신에 대한 단상.(5)
- 2005/05/16 시계바늘은 돌아간다
- 2005/04/30 온 힘의 60%.(5)
- 2005/02/06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 2005/01/21 초등학생, 중학생, 그리고 고등학생
실재에 관한 고찰. 자신의 실재를 인지하는 것 보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대상인 주변 환경, 혹은 주위 사람들이 나를 '인지하는
행위'를 통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립하려 함. 다만 이
경우 주변 사람들이 내 존재를 무시하는 등 거부하게 되면 스스로의 실재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결과를 낳고, 따라서 스스로의 존재에 회의감이 들게 됨.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실재하고,
감각이 실존한다는 것을 '종교적'으로 라도 믿고 인정할 필요가 있음. 주변을 인식하는 이 모든 것이 실재하지 않는 단순한
전기자극이라 할 지라도, 스스로가 사고한다는 그 사실은 변하지 않고 스스로가 인지할 수 밖에 없음. 데카르트가 한 말 대로,
cogito ergo sum이다.
글을 쓸 때 왜 항상 진취적인 듯 보이는 생각으로 생각의 흐름을 종결시키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슬픈 결론은 나를 너무 슬프게 하기 때문에 제어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좀 즐거운 결론을 내면 생각을 쉽게 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만, 또한 그 만큼 현명한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마지막에 거는 최면은, 나는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행복하다. 내가 실존하는지 아닌지는 아직 실감할 수 없지만, 행복감, 그 화학적 반응 만큼은 마약처럼 내 몸을 잠식하고 있으니까 그걸로 된거다. 스스로의 행복에 건배. 즐겁게 자도록 하자. 이상 끝.
2008년 11월 27일, 정적.
2008/12/02 07:59
독백
2008년 11월 27일. 합창단으로 선 세 번째 정기공연이 끝났다.
끝나고 남은 것은, 단지 밀어닥치는 수많은 감정과 같이 호흡했던 단원들에 대한 기억들.
이제 5일 지난 시점에서 그 무대 위의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와는 무관하게, 나의 감정만을 토대로.
정적(靜寂). 고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두 글자 모두 고요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나는 이 단어를 굉장히 좋아한다 - 어감이든, 뜻이든. 그래서 닉네임도 'serenity'라는 단어를 넣어서 만들었다.
그리고 이 단어만큼 합창을 잘 표현해주는 단어도 없지 않나 싶다.
새벽에 방에 가만히 앉아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자.
룸메의 코 고는 소리, 냉장고나 컴퓨터의 기계음, 창 밖의 바람 소리, 집중하면 들리기도 하는 손목시계 바늘 소리.
그리고 지금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까지. 어디에도 소리는 있다.
그렇다. 진정한 정적, 영원한 고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영원히 잠들지 않는 한.
결국, 정적이라는 것은 일종의 긴장된 공간이다.
공기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 누구 하나라도 움직이면 바로 끊어져 버릴것만 같은 그런 긴장감.
그렇게 잡아당겨진 긴장을 살짝 튕겨 울려퍼지는 공명음. 이 전부가 정적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이것을 인지한다. 눈으로, 귀로, 피부로 모든 긴장감을 느낀다.
가끔씩 경험하곤 한다.
수학 문제를 풀 때 주변의 소리가 모두 사라지고 내 모든 신경이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
음악을 들을 때 다른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모든 음에 내 신경이 한 가닥씩 연결되어 있는 느낌.
이 모든 것이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정적이자 자신만의 공간이다.
이 공간 내에서는 어떤 생각의 흐름도, 어떤 자극도 나를 방해할 수 없다.
이제 이 공간을 서로 겹쳐본다. 이번 정기연주회의 레퍼토어, 특히 Pie Jesu를 부를 때의 감각으로.
서로의 긴장된 공간을 느끼고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정적을 만들어낸다.
이 정적을, 긴장된 공기를 관객들에게도 전염시키고 우리의 호흡을 같이 느낄 수 있다면 최상일텐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공간을 만들고 관객에게 전달한다.
고요했다. 동시에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실감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의 정적을 그대로 보관해 두기로 했다. 내 머리 속 한 켠에 영원히.
풀어버리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고, 금방이라도 연기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것 같아서..
그리고 영원히 다시 떠올리겠지. 2008년, 11월 27일의 정적을.
끝나고 남은 것은, 단지 밀어닥치는 수많은 감정과 같이 호흡했던 단원들에 대한 기억들.
이제 5일 지난 시점에서 그 무대 위의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와는 무관하게, 나의 감정만을 토대로.
정적(靜寂). 고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두 글자 모두 고요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나는 이 단어를 굉장히 좋아한다 - 어감이든, 뜻이든. 그래서 닉네임도 'serenity'라는 단어를 넣어서 만들었다.
그리고 이 단어만큼 합창을 잘 표현해주는 단어도 없지 않나 싶다.
새벽에 방에 가만히 앉아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자.
룸메의 코 고는 소리, 냉장고나 컴퓨터의 기계음, 창 밖의 바람 소리, 집중하면 들리기도 하는 손목시계 바늘 소리.
그리고 지금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까지. 어디에도 소리는 있다.
그렇다. 진정한 정적, 영원한 고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영원히 잠들지 않는 한.
결국, 정적이라는 것은 일종의 긴장된 공간이다.
공기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 누구 하나라도 움직이면 바로 끊어져 버릴것만 같은 그런 긴장감.
그렇게 잡아당겨진 긴장을 살짝 튕겨 울려퍼지는 공명음. 이 전부가 정적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이것을 인지한다. 눈으로, 귀로, 피부로 모든 긴장감을 느낀다.
가끔씩 경험하곤 한다.
수학 문제를 풀 때 주변의 소리가 모두 사라지고 내 모든 신경이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
음악을 들을 때 다른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모든 음에 내 신경이 한 가닥씩 연결되어 있는 느낌.
이 모든 것이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정적이자 자신만의 공간이다.
이 공간 내에서는 어떤 생각의 흐름도, 어떤 자극도 나를 방해할 수 없다.
이제 이 공간을 서로 겹쳐본다. 이번 정기연주회의 레퍼토어, 특히 Pie Jesu를 부를 때의 감각으로.
서로의 긴장된 공간을 느끼고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정적을 만들어낸다.
이 정적을, 긴장된 공기를 관객들에게도 전염시키고 우리의 호흡을 같이 느낄 수 있다면 최상일텐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공간을 만들고 관객에게 전달한다.
고요했다. 동시에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실감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의 정적을 그대로 보관해 두기로 했다. 내 머리 속 한 켠에 영원히.
풀어버리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고, 금방이라도 연기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것 같아서..
그리고 영원히 다시 떠올리겠지. 2008년, 11월 27일의 정적을.
무지한 자신을 돌아보며.
2007/08/02 15:06
독백
성경 또는 바이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혔다고 하는 책이다.
(성경이란 이미지가 나에겐 더 크기 때문에 이하 성경이라고 칭하겠다.)
난 예전에 교회를 다녔다. 초등학교~중학교때의 일이라 이젠 그다지 기억에 없지만, 분명 교회를 다니고 교리공부를 하고 성경을 읽었었다. 수련회에 가서 성경 완독 같은것도 하고. 하지만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교회를 다니길 그만둔건 순전히 나의 게으름과 귀찮음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만둔 것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을지 아닐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예전에 교회를 다녔다는건 사실이고, 그것이 어떤 이미지로 내 머리의 한쪽 구석에 남아있었을지도, 혹은 지금도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교회나 기독교 이야기로 많이 시끄럽다. 아라는 종교 관련 글로 넘쳐나 이젠 들어가서 읽기도 힘들 정도고. 그런데 이렇게 넘쳐나는 글을 봐도 난 도저히 어느 쪽이 옳은지 모르겠다. 인륜과 법을 통해 판단할 때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게 아니다. 단지 교회의 성경 해석과 선교를 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주장, 남에게 피해를 끼쳐선 안된다는 주장과 기독교 비판론자들의 시각 등 전부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그런 의미보다는 왜 그런 주장이 나와야 하고 그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반박할 수 있는지 전체적인 배경과 내용 자체를 아예 모르겠다는 뜻이다.
반기련의 '안티 바이블'이라는 글을 봤다. 성경 상에 나타나는 여러 모순점을 지적하는 것이 목적인 글이라고 판단되었다(사실은 지적을 훨씬 뛰어넘은 수준이지만). 비록 그것이 진짜로 모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그럴듯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이 최후에 남는 진리일까? 바이블은 단순한 악서인가? 내 어릴적의 환상이 그려낸 이미지일진 몰라도, 단순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의 몇억이 넘는 인구가 믿고 있는 종교의 경전이 단순한 악서라는 말은 믿기 힘든 말이다. 오히려 성서라면 모를까.
과연 바이블엔 어떤 내용의 글이 담겨 있으며 어떤 해석이 가능할 것인가? 예전에 읽은 어렴풋한 기억도 이젠 거의 다 지워지고 남는건 몇몇 큰 줄거리 뿐이다. 성경을 다시 읽어본다면 몇몇 해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겐 종교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되는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많은 것들을 해 나가는 과정 중에 잠시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성경을 읽고 기독교인들과 반기독교인들의 생각을 이해해보고 싶다.
덧) 사회, 역사, 정치 등에 대한 스스로의 무관심이 많은 곳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인터넷에 떠도는 비판적인 글들을 읽을 때 느끼는데, 아는게 있어야 역시 비판을 하든 말든 할 수 있는 것 같다. 역시 정보는 - 특히 인터넷의 정보 - 스스로 느끼고 경험한 것이 아니면 참고자료 이상의 가치가 없다. 일단 관심을 갖고 믿을 수 있는 정보를 판단하고 자료를 종합하여 새로운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성경이란 이미지가 나에겐 더 크기 때문에 이하 성경이라고 칭하겠다.)
난 예전에 교회를 다녔다. 초등학교~중학교때의 일이라 이젠 그다지 기억에 없지만, 분명 교회를 다니고 교리공부를 하고 성경을 읽었었다. 수련회에 가서 성경 완독 같은것도 하고. 하지만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교회를 다니길 그만둔건 순전히 나의 게으름과 귀찮음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만둔 것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을지 아닐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예전에 교회를 다녔다는건 사실이고, 그것이 어떤 이미지로 내 머리의 한쪽 구석에 남아있었을지도, 혹은 지금도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교회나 기독교 이야기로 많이 시끄럽다. 아라는 종교 관련 글로 넘쳐나 이젠 들어가서 읽기도 힘들 정도고. 그런데 이렇게 넘쳐나는 글을 봐도 난 도저히 어느 쪽이 옳은지 모르겠다. 인륜과 법을 통해 판단할 때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게 아니다. 단지 교회의 성경 해석과 선교를 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주장, 남에게 피해를 끼쳐선 안된다는 주장과 기독교 비판론자들의 시각 등 전부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그런 의미보다는 왜 그런 주장이 나와야 하고 그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반박할 수 있는지 전체적인 배경과 내용 자체를 아예 모르겠다는 뜻이다.
반기련의 '안티 바이블'이라는 글을 봤다. 성경 상에 나타나는 여러 모순점을 지적하는 것이 목적인 글이라고 판단되었다(사실은 지적을 훨씬 뛰어넘은 수준이지만). 비록 그것이 진짜로 모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그럴듯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이 최후에 남는 진리일까? 바이블은 단순한 악서인가? 내 어릴적의 환상이 그려낸 이미지일진 몰라도, 단순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의 몇억이 넘는 인구가 믿고 있는 종교의 경전이 단순한 악서라는 말은 믿기 힘든 말이다. 오히려 성서라면 모를까.
과연 바이블엔 어떤 내용의 글이 담겨 있으며 어떤 해석이 가능할 것인가? 예전에 읽은 어렴풋한 기억도 이젠 거의 다 지워지고 남는건 몇몇 큰 줄거리 뿐이다. 성경을 다시 읽어본다면 몇몇 해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겐 종교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되는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많은 것들을 해 나가는 과정 중에 잠시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성경을 읽고 기독교인들과 반기독교인들의 생각을 이해해보고 싶다.
덧) 사회, 역사, 정치 등에 대한 스스로의 무관심이 많은 곳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인터넷에 떠도는 비판적인 글들을 읽을 때 느끼는데, 아는게 있어야 역시 비판을 하든 말든 할 수 있는 것 같다. 역시 정보는 - 특히 인터넷의 정보 - 스스로 느끼고 경험한 것이 아니면 참고자료 이상의 가치가 없다. 일단 관심을 갖고 믿을 수 있는 정보를 판단하고 자료를 종합하여 새로운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블로그에 글이 안 올라가기 시작한지 어언 3달.
사실 나는 블로그에 매일 로그인을 한다.
관리자 모드에서 RSS 리더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 글을 구독하고 나가는 일을 매일 반복해왔다. 그러면서 왜 글을 쓸 생각을 하진 못하겠는지가 꽤나 의문스럽다. 예전에 올린 포스팅 중에 더이상 블로그에 대한 다짐을 글로 올리지 않겠다고 한 글이 있다. 더 이상 다짐하는 글을 올리는 것은 지금으로선 확실히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짐하지 않으려고 한건 아닌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내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글로 남겨놓는다.
그런 의미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해보고자 한다.
순간 순간에 머리를 스쳐지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생각들.
그런 생각들 속에서 보석을 찾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나는 블로그에 매일 로그인을 한다.
관리자 모드에서 RSS 리더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 글을 구독하고 나가는 일을 매일 반복해왔다. 그러면서 왜 글을 쓸 생각을 하진 못하겠는지가 꽤나 의문스럽다. 예전에 올린 포스팅 중에 더이상 블로그에 대한 다짐을 글로 올리지 않겠다고 한 글이 있다. 더 이상 다짐하는 글을 올리는 것은 지금으로선 확실히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짐하지 않으려고 한건 아닌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내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글로 남겨놓는다.
그런 의미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해보고자 한다.
순간 순간에 머리를 스쳐지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생각들.
그런 생각들 속에서 보석을 찾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 세달만의 포스팅이다. 귀찮음에 못이겨 블로그를 거의 방치해두고 있었다;;
오늘 비비에 보드를 개설했는데, 문득 블로그 생각이 났다.
비비는 아무 생각없이 매우 짧은 글을 올릴 수 있고 내용도 별 내용이 없다.
하루에 몇개의 글을 올려도 별로 부담이 없고.
하지만 비비에 비해 블로그는 글을 올리기가 좀더 부담스럽다고 해야할까.... 그런 느낌이다.
그렇다고 블로그를 그만둘 생각은 아니다.
사실 요즘에도 블로그에 들어와 다른 사람의 포스팅을 구독하곤 하였다.
다만, 앞으로 블로그도 좀더 가벼운 기분으로 해보자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최근에 요즘 왜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내 블로그도 가끔 들어와보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좀 가벼운 기분으로 틈틈이 글을 올려야겠다 :-)
오늘 비비에 보드를 개설했는데, 문득 블로그 생각이 났다.
비비는 아무 생각없이 매우 짧은 글을 올릴 수 있고 내용도 별 내용이 없다.
하루에 몇개의 글을 올려도 별로 부담이 없고.
하지만 비비에 비해 블로그는 글을 올리기가 좀더 부담스럽다고 해야할까.... 그런 느낌이다.
그렇다고 블로그를 그만둘 생각은 아니다.
사실 요즘에도 블로그에 들어와 다른 사람의 포스팅을 구독하곤 하였다.
다만, 앞으로 블로그도 좀더 가벼운 기분으로 해보자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최근에 요즘 왜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내 블로그도 가끔 들어와보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좀 가벼운 기분으로 틈틈이 글을 올려야겠다 :-)
수학과 나 자신에 대한 단상.
2005/05/26 19:41
독백
수학.
그 단어 - 영어로는 mathematics - 는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내가 어렸을때 부터 좋아했고,
내가 어렸을때 부터 곧잘 해왔고,
내가 지금까지도 좋아하고 곧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학문 - 과목.
나의 기저가 되어주는 그 학문은, 내 생활에 떼놓을 수 없는 요소.
.
.
.
쭉 그렇게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불안하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좋아하고 있는 것인지...
주위의 다른사람이 하고 있는 진척도나 그런것에 신경이 가는,
다른이들이 너무 잘하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들.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수학을 전공해봤자 별거 아니게 될까 하는...
주관적으로, 나는 수학에 대해 별로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온것, 쌓아온 것을 버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 남은것은 이거 하나뿐이기 때문에...
내 두뇌 속에 돌을 던진다.
이윽고 긴 막대를 가져와, 그 속을 휘젓는다.
그렇게 하여도, 떠오르는 것은 텅빈 요소들 뿐이다.
'수학이 좋은가?'라는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다.
애써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수학으로부터 눈을 돌려도,
역학과 같은 과목으로 자신에 대해 변명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왜 역학을 수강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자신에 대한 도피이며, 변명이었다.
선형대수학을 빼고 역학을 넣은 것은 발버둥이며, 단순한 오기였다.
나는 바보다.
수학으로부터 내가 눈을 돌리면, 수학도 눈을 돌린다는 것을....
그 사실을...
왜, 나는, 몰랐던것일까...
즐거운 수학. 즐거웠던 수학.
2학년 1학기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한 과목에 즐겁게 공부하고 자진해서 공부하던 그때의 그곳으로...
이산구조와 기하학을 듣던 그 시절으로...
박병하 선생님의 수업을 듣던 그 때로...
덧1) 아무래도 권장도서인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어보아야 겠다. 예전에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나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나태한 생활태도에도 이제 질렸다. 매일매일의 지친 모습을 타파하고 싶다...
덧2) 아직도 수학에 관련된(교과서 종류를 제외한)책이라면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
그 단어 - 영어로는 mathematics - 는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내가 어렸을때 부터 좋아했고,
내가 어렸을때 부터 곧잘 해왔고,
내가 지금까지도 좋아하고 곧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학문 - 과목.
나의 기저가 되어주는 그 학문은, 내 생활에 떼놓을 수 없는 요소.
.
.
.
쭉 그렇게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불안하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좋아하고 있는 것인지...
주위의 다른사람이 하고 있는 진척도나 그런것에 신경이 가는,
다른이들이 너무 잘하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들.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수학을 전공해봤자 별거 아니게 될까 하는...
주관적으로, 나는 수학에 대해 별로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온것, 쌓아온 것을 버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 남은것은 이거 하나뿐이기 때문에...
내 두뇌 속에 돌을 던진다.
이윽고 긴 막대를 가져와, 그 속을 휘젓는다.
그렇게 하여도, 떠오르는 것은 텅빈 요소들 뿐이다.
'수학이 좋은가?'라는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다.
애써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수학으로부터 눈을 돌려도,
역학과 같은 과목으로 자신에 대해 변명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왜 역학을 수강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자신에 대한 도피이며, 변명이었다.
선형대수학을 빼고 역학을 넣은 것은 발버둥이며, 단순한 오기였다.
나는 바보다.
수학으로부터 내가 눈을 돌리면, 수학도 눈을 돌린다는 것을....
그 사실을...
왜, 나는, 몰랐던것일까...
즐거운 수학. 즐거웠던 수학.
2학년 1학기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한 과목에 즐겁게 공부하고 자진해서 공부하던 그때의 그곳으로...
이산구조와 기하학을 듣던 그 시절으로...
박병하 선생님의 수업을 듣던 그 때로...
덧1) 아무래도 권장도서인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어보아야 겠다. 예전에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나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나태한 생활태도에도 이제 질렸다. 매일매일의 지친 모습을 타파하고 싶다...
덧2) 아직도 수학에 관련된(교과서 종류를 제외한)책이라면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
시계바늘은 돌아간다
2005/05/16 02:24
독백
하루종일 시계바늘은 돌아가고 있다.
누군가 시계바늘보고 계속 돌아가라고 명령한 것도 아닌데, 시계바늘은 지금도 계속 돌아가고 있다. 물론, 인간이 기계를 만들고 그 동력으로서 전지를 넣은 후에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시계바늘에게 돌아가라고 명령한 것과 다를 바 없긴 하다. 하지만, 마치 생명이 있는 듯이, 그러나 매우 기계적인 움직임이지만, 초침과 분침, 시침은 지금도 계속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사람의 시간도 이렇게 계속 흘러가는 법이다.
시계바늘이 쉬지않고 끊임없이 돌아가듯이, 사람의 시간도 끊임없이 흘러가고, 사람 몸의 각 세포들도 시간에 맞추어 역동하고 있다.
시간이란 멈추는 법이 없다.
사람이 아무리 멈추기를 원하여도, 사람은 절대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분명 그 사실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결코 그 진실은 깨닫지 못하리라. 시간이라는 것의 진실이라는 것은, 시간이 무한하고 불변하기에(물론 중력이나 여러가지 요소에 의해 시공간이 변형된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짧은 생으로서는 영원히 깨닫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가?
시간이라는 것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간이 무엇을 하든 시계바늘은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만에 신경을 쓰고 과거는 잊어야만 하는가? 이미 지나간 사건은 결코 되돌아오는 바 없을 터, 우리는 앞만을 바라보며 나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다.
ㅡ인간이기에, 과거라는 것은 고려되어야만 할 사항.
인간의 행동은 아직까지 규정되어질 수 없는 어떤 신비한 '것'이기에, 인간은 뒤를 되돌아본다. 어떠한 조건이 만족되었을 경우 항상 그 '사건'이라는 것이 100%의 확률로 이루어지는 기계와는 달리, 인간에게 100%의 확률이라는 것은 없다. 인간은 논리적 사고가 가능한 존재이나 또한 비논리적 사고도 가능한 존재이기에, 어떠한 사건에 대해 인간이 그것을 수행하거나 영향을 미칠것인가ㅡ에 대한 것은 절대로 규정될 수 없기 마련.
규정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확률을 높여나간다. 확률이 높다면, 어떻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동치이고, 그 말은 인간이 인간의 의도대로 어떠한 행위를 성취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다를 바 없으므로. 과거가 없다면,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 항상 도박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해, 때로는 어떤 선택지를 배제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선택지에 자신의 의도를 심어 다른 사람을 위한, 혹은 미래를 위한 초석으로 쓰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선택지를 찾아내기도 하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시간ㅡ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그 존재.
인간은 각각의 시간을 가지며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는 각자의 자유. 그러나 그 시간이 언제 다할지는 미지수라는 위험부담을 항상 안고서, 인간은 살아가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신의 뒤를 돌아보며 앞날을 결정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 결코 멈추지 않는 시간, 그리고 결코 되돌아가지 않는 시간을 발자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시간은 없다. 자신의 발자국의 단점을 개선시키고 새로운 시대로의 단서로서 활용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지 않은가?
이 세상에서 신과 같은 존재, 시간. 스스로도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고,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도 물론 무한한 존재인 시간의 끝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유한한 존재를 최대한 활용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최초에 만들어졌을때 부터 주어진 일이 아닐까?
누군가 시계바늘보고 계속 돌아가라고 명령한 것도 아닌데, 시계바늘은 지금도 계속 돌아가고 있다. 물론, 인간이 기계를 만들고 그 동력으로서 전지를 넣은 후에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시계바늘에게 돌아가라고 명령한 것과 다를 바 없긴 하다. 하지만, 마치 생명이 있는 듯이, 그러나 매우 기계적인 움직임이지만, 초침과 분침, 시침은 지금도 계속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사람의 시간도 이렇게 계속 흘러가는 법이다.
시계바늘이 쉬지않고 끊임없이 돌아가듯이, 사람의 시간도 끊임없이 흘러가고, 사람 몸의 각 세포들도 시간에 맞추어 역동하고 있다.
시간이란 멈추는 법이 없다.
사람이 아무리 멈추기를 원하여도, 사람은 절대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분명 그 사실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결코 그 진실은 깨닫지 못하리라. 시간이라는 것의 진실이라는 것은, 시간이 무한하고 불변하기에(물론 중력이나 여러가지 요소에 의해 시공간이 변형된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짧은 생으로서는 영원히 깨닫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가?
시간이라는 것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간이 무엇을 하든 시계바늘은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만에 신경을 쓰고 과거는 잊어야만 하는가? 이미 지나간 사건은 결코 되돌아오는 바 없을 터, 우리는 앞만을 바라보며 나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다.
ㅡ인간이기에, 과거라는 것은 고려되어야만 할 사항.
인간의 행동은 아직까지 규정되어질 수 없는 어떤 신비한 '것'이기에, 인간은 뒤를 되돌아본다. 어떠한 조건이 만족되었을 경우 항상 그 '사건'이라는 것이 100%의 확률로 이루어지는 기계와는 달리, 인간에게 100%의 확률이라는 것은 없다. 인간은 논리적 사고가 가능한 존재이나 또한 비논리적 사고도 가능한 존재이기에, 어떠한 사건에 대해 인간이 그것을 수행하거나 영향을 미칠것인가ㅡ에 대한 것은 절대로 규정될 수 없기 마련.
규정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확률을 높여나간다. 확률이 높다면, 어떻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동치이고, 그 말은 인간이 인간의 의도대로 어떠한 행위를 성취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다를 바 없으므로. 과거가 없다면,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 항상 도박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해, 때로는 어떤 선택지를 배제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선택지에 자신의 의도를 심어 다른 사람을 위한, 혹은 미래를 위한 초석으로 쓰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선택지를 찾아내기도 하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시간ㅡ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그 존재.
인간은 각각의 시간을 가지며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는 각자의 자유. 그러나 그 시간이 언제 다할지는 미지수라는 위험부담을 항상 안고서, 인간은 살아가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신의 뒤를 돌아보며 앞날을 결정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 결코 멈추지 않는 시간, 그리고 결코 되돌아가지 않는 시간을 발자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시간은 없다. 자신의 발자국의 단점을 개선시키고 새로운 시대로의 단서로서 활용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지 않은가?
이 세상에서 신과 같은 존재, 시간. 스스로도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고,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도 물론 무한한 존재인 시간의 끝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유한한 존재를 최대한 활용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최초에 만들어졌을때 부터 주어진 일이 아닐까?
나는 이제껏 어떤 일을 하면서, 90~100%의 힘을 쏟은 적이 없다.
공부를 하여도, 게임을 하여도, 다른 무엇을 하여도, 나의 힘을 모두 쏟을 만큼 집중을 하지 못했기 때문. 요즘, 이러한 점이 나의 큰 약점이면서 단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번 미적분학 III 시험을 보고 그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난이도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에 문제를 그렇게 많이 풀어보지 않았다는 점이 매우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는 것을. 사실, 나는 지금의 공부방법을 바꿀 생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지금의 공부방법을 실천하기 위한 나의 의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매우 불안하다.
나에게 90% 이상의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한 과목 - 바로 기하학 - 과 비슷한 과목을 공부하고 싶다.
공부를 하여도, 게임을 하여도, 다른 무엇을 하여도, 나의 힘을 모두 쏟을 만큼 집중을 하지 못했기 때문. 요즘, 이러한 점이 나의 큰 약점이면서 단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번 미적분학 III 시험을 보고 그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난이도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에 문제를 그렇게 많이 풀어보지 않았다는 점이 매우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는 것을. 사실, 나는 지금의 공부방법을 바꿀 생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지금의 공부방법을 실천하기 위한 나의 의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매우 불안하다.
나에게 90% 이상의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한 과목 - 바로 기하학 - 과 비슷한 과목을 공부하고 싶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2005/02/06 01:16
독백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래도 내가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아, 영어공부란 정말 나에게 있어 짜증나게 다가올 뿐이다.
왠지 모르게 영어라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 나.
사실, 영어 문법같은것을 알아가면 재미있긴 한데,
영어라는 것 자체에 대하여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겠다.
계절학기를 한 2주간, 정말 열심히 놀았다고 생각한다.
계절학기를 오기 직전에 나 자신과 한 약속도 어기고.
이미 컴퓨터라는 문명의 이기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영어가 싫어서 공부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
수학이라면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어떤 면에서는 자신있던 것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집착도 더 심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잘 안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최적의 해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최적이 아니라도 만족할 만한 결과라도 얻어야 할텐데,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미래의 무덤을 파는 듯해 무섭다.
어떻게든 해야할텐데......
그래도 내가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아, 영어공부란 정말 나에게 있어 짜증나게 다가올 뿐이다.
왠지 모르게 영어라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 나.
사실, 영어 문법같은것을 알아가면 재미있긴 한데,
영어라는 것 자체에 대하여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겠다.
계절학기를 한 2주간, 정말 열심히 놀았다고 생각한다.
계절학기를 오기 직전에 나 자신과 한 약속도 어기고.
이미 컴퓨터라는 문명의 이기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영어가 싫어서 공부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
수학이라면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어떤 면에서는 자신있던 것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집착도 더 심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잘 안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최적의 해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최적이 아니라도 만족할 만한 결과라도 얻어야 할텐데,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미래의 무덤을 파는 듯해 무섭다.
어떻게든 해야할텐데......
초등학생, 중학생, 그리고 고등학생
2005/01/21 10:48
독백
요즘의 초등학생은 확실히 중학생, 고등학생과 구별이 된다.
얼굴이나 신장, 이런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상에서 봐도 구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초등학생은 정상적이겠지만,
우리는 (수가 적든간에) 초등학생에 대해서
그리 좋다고 할 만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
몇몇 특정한 사람들이 초등학생과 비슷한 행동을 하면,
그것은 그냥 초등학생 취급을 받을 뿐이다.
초등학생은 중학생, 고등학생과는 확연히 다르다.
====================================================
중학생, 고등학생에 대해 최근까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보니 알 수 있을 것 같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차이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차이보다 큰것을.
중학교 2학년때, 선생님이 한번 시험삼아 쳐보라고 했던,
우리 학교의 입학시험에 합격 했을때 고민했다.
'과연 이 학교에 가야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그 당시로서는 1년 일찍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 결과로, 고등학교에 1년 일찍 입학하게 되었다.
중학교때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이것은 포항의 교육사정이다)
지금은 거의 연락도 안되고, 단지 몇몇 친구만 가끔 만날뿐.
그러나 나와 같은 입장으로 입학한 이들이 학교에 있었고,
잘 대해준 형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곧 고3이 되려는 시점이다.
2년전, 나는 중학교때의 그 생각 그대로 고등학교에 왔었다.
고등학교 2년을 지내면서도, 아직 중학생같은 느낌으로 살아왔다.
단지 기숙사 학교였기 때문에 좀더 즐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매일매일 공부를 하고, 지내는 것에 벅차서,
주위의 것, 미래에 할 것 등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부담으로 다가온다.
일단 갈 대학교부터 정하고, 조기졸업 여부도 정해야 한다.
너무 부담스럽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진로나 대학진학은 별로 머릿속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해야만 할 시기인 것이다.
이번 겨울방학을 계기로 하여, 한층 더 성장한 내가 되었으면 한다.
앞을 미리 내다보고, 모든것을 판단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얼굴이나 신장, 이런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상에서 봐도 구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초등학생은 정상적이겠지만,
우리는 (수가 적든간에) 초등학생에 대해서
그리 좋다고 할 만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
몇몇 특정한 사람들이 초등학생과 비슷한 행동을 하면,
그것은 그냥 초등학생 취급을 받을 뿐이다.
초등학생은 중학생, 고등학생과는 확연히 다르다.
====================================================
중학생, 고등학생에 대해 최근까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보니 알 수 있을 것 같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차이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차이보다 큰것을.
중학교 2학년때, 선생님이 한번 시험삼아 쳐보라고 했던,
우리 학교의 입학시험에 합격 했을때 고민했다.
'과연 이 학교에 가야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그 당시로서는 1년 일찍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 결과로, 고등학교에 1년 일찍 입학하게 되었다.
중학교때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이것은 포항의 교육사정이다)
지금은 거의 연락도 안되고, 단지 몇몇 친구만 가끔 만날뿐.
그러나 나와 같은 입장으로 입학한 이들이 학교에 있었고,
잘 대해준 형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곧 고3이 되려는 시점이다.
2년전, 나는 중학교때의 그 생각 그대로 고등학교에 왔었다.
고등학교 2년을 지내면서도, 아직 중학생같은 느낌으로 살아왔다.
단지 기숙사 학교였기 때문에 좀더 즐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매일매일 공부를 하고, 지내는 것에 벅차서,
주위의 것, 미래에 할 것 등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부담으로 다가온다.
일단 갈 대학교부터 정하고, 조기졸업 여부도 정해야 한다.
너무 부담스럽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진로나 대학진학은 별로 머릿속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해야만 할 시기인 것이다.
이번 겨울방학을 계기로 하여, 한층 더 성장한 내가 되었으면 한다.
앞을 미리 내다보고, 모든것을 판단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