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란 참 힘든 일이다.
최근에 문제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낀 점인데,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옮기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옮기는게 이렇게 힘든데, 모국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은 얼마나 더 힘든 작업일까! 하지만 이런 작업이 어려운 만큼 제대로 번역을 하지 않았을때 독자가 그 글을 읽으며 느끼는 난해함은 훨씬 더 클 것이다. 번역하는 사람은 힘들어하고 독자는 더 높은 퀄리티의 번역을 원한다. 이건 역자와 독자 사이에 결코 완전히 메워지는 일은 없을, 그런 커다란 골짜기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수학 문제는 일반 문학 작품과는 다르게 비유와 상징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번역이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수월한 작업 중에서도 걸림돌이 몇몇 있는데, 대부분 영어의 언어적 구조와 한국어의 언어적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문제점이다.
1) 어순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점
영어와 한국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순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이는 대로 번역을 하다보면 어색한 문장이 되기 쉽다. 이럴 때는 정말 재량껏 뜻을 보존한 채로 말이 되는 한글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Let a, b, c be side lengths of a triangle with a+b+c=1
이라는 문장이 있으면 이것을
a) a, b, c는 삼각형의 세 변이며 a+b+c=1이다.
b) a+b+c=1인 삼각형의 세 변 a, b, c가 있다.
c) a, b, c는 a+b+c=1을 만족하는 삼각형의 세 변이다.
d) 삼각형의 세 변 a, b, c가 a+b+c=1을 만족한다고 하자.
등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만족한다고 하자' 같은 문장이나 '만족한다'라는 문장은 어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경우 a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 경우엔 상관 없지만) b는
(a+b+c=1인 삼각형)의 세 변 a, b, c가 있다.
a+b+c=1인 (삼각형의 세 변 a, b, c)가 있다.
를 혼동할 수 있기 때문에 1에 비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2) 수동태의 문제점
영어엔 수동태가 엄청나게 많이 쓰이지만, 한글에선 별로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Some marbles are distributed over 2n+1 bags.
라는 문장을 "구슬 몇개가 2n+1개의 가방에 나눠져 있다."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2n+1개의 가방에 구슬 몇개를 나누어 넣었다"라는 표현이 좀 더 자연스럽다. 번역하면서 나도 모르게 수동태를 그대로 번역하는 일이 많은데, 아무 생각없이 뜻을 그대로 옮길때는 알아채기 어려운 실수다.
3) 관계대명사 문제
수학 문제를 번역할 때 가장 곤란했던 부분이 관계대명사를 처리하는 부분이었다. 한국어는 서술하는 부분이 보통 문장의 앞쪽에 오기 때문에, 주어보다 훨씬 더 긴 서술부가 관계대명사 형식으로 문장의 뒤쪽에 오는 영어를 그대로 번역하기는 꽤나 난감한 일이다. 이런 경우 문제의 문맥에 맞춰 그냥 그 서술을 짧은 서술부로 고쳐 문장의 앞에 갖다 놓거나, 혹은 접속사를 이용하여 문장을 끊어주는 일을 해야한다.
이런 경우 보통 "which ~"와 같은 문장보다는 "such that ~" 구문이 사용된 문장이 훨씬 번역하기 곤란하며 가끔 나오는 "satisfying the following condition: ~" 같은 구문도 정말 곤란하다.
4) 여러가지 표현 문제
"positive integer"라는 명사절을 생각해보자. 이 명사절은 '양의 정수'라고 번역하는 것 보다 '자연수'라고 번역하는 쪽이 자연스럽다. 이처럼 표현 상에서 직역하면 어색한 느낌이 나는 표현이 많다. 이것은 두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문제다. "for each", "for all", "respectively"등의 표현 등이 이런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이 외에도 나 자신의 번역투가 어색한 부분(영어나 일본어체의 번역 - 특히 of가 많이 들어가는 문장이면 심해진다), 영어 문장이 한글 문장에 비해 길어서 생기는 문제점 등이 있다.
수학 문제는 말이 애매하면 문장의 뜻이 완전히 달라져 구하라는 것이 달라지거나 조건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번역을 하면서 여러가지로 신경써야 할 점이 많았다. 번역에 걸린 시간은 한 문제당 10분에서 많게는 40분정도. 쉬운 문제는 보자마자 거의 바로 번역이 되지만, 어떤 문제는 그림을 그려보지 않고는 도저히 한글로 설명하기 힘든 경우도 있었다.
기하 문제는 위치관계를 영어에서 한글로 바로 직역하면 한글이 꼬여 애매한 문장이 되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그림을 그려 완전히 새 문장으로 그림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수식은 없고 말 만으로 채워진 조합수학 문제. 이런 문제는 문장이 길고 문제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 도입되는 '의회'라던가 '친구끼리 편지를 보낸다'등의 설정이 있어 그런 부분을 한글로 매끄럽게 옮기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수학문제 번역을 하면서 영어로는 문제를 어떤 식으로 서술하는지 여러 시각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도 이런 일거리가 들어오면 사양치 않고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
덧) 전부터 궁금했던 것 하나. 받침이 있으면 '~이다'를 쓰고 아니면 '~다'를 쓴다고 알고 있었는데 많은 수학문제에는 '자연수이다' '정수이다' '서로 소이다' 같은 표현이 많이 쓰인다. 이것은 둘 다 허용되는 표현이며, 문체에는 '~이다'를 많이 쓴다고 한다(반대 경우인 받침에 '~다'는 틀린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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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7 09:44
2007/07/29 0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