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7일. 합창단으로 선 세 번째 정기공연이 끝났다.
끝나고 남은 것은, 단지 밀어닥치는 수많은 감정과 같이 호흡했던 단원들에 대한 기억들.
이제 5일 지난 시점에서 그 무대 위의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와는 무관하게, 나의 감정만을 토대로.
정적(靜寂). 고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두 글자 모두 고요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나는 이 단어를 굉장히 좋아한다 - 어감이든, 뜻이든. 그래서 닉네임도 'serenity'라는 단어를 넣어서 만들었다.
그리고 이 단어만큼 합창을 잘 표현해주는 단어도 없지 않나 싶다.
새벽에 방에 가만히 앉아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자.
룸메의 코 고는 소리, 냉장고나 컴퓨터의 기계음, 창 밖의 바람 소리, 집중하면 들리기도 하는 손목시계 바늘 소리.
그리고 지금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까지. 어디에도 소리는 있다.
그렇다. 진정한 정적, 영원한 고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영원히 잠들지 않는 한.
결국, 정적이라는 것은 일종의 긴장된 공간이다.
공기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 누구 하나라도 움직이면 바로 끊어져 버릴것만 같은 그런 긴장감.
그렇게 잡아당겨진 긴장을 살짝 튕겨 울려퍼지는 공명음. 이 전부가 정적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이것을 인지한다. 눈으로, 귀로, 피부로 모든 긴장감을 느낀다.
가끔씩 경험하곤 한다.
수학 문제를 풀 때 주변의 소리가 모두 사라지고 내 모든 신경이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
음악을 들을 때 다른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모든 음에 내 신경이 한 가닥씩 연결되어 있는 느낌.
이 모든 것이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정적이자 자신만의 공간이다.
이 공간 내에서는 어떤 생각의 흐름도, 어떤 자극도 나를 방해할 수 없다.
이제 이 공간을 서로 겹쳐본다. 이번 정기연주회의 레퍼토어, 특히 Pie Jesu를 부를 때의 감각으로.
서로의 긴장된 공간을 느끼고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정적을 만들어낸다.
이 정적을, 긴장된 공기를 관객들에게도 전염시키고 우리의 호흡을 같이 느낄 수 있다면 최상일텐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공간을 만들고 관객에게 전달한다.
고요했다. 동시에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실감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의 정적을 그대로 보관해 두기로 했다. 내 머리 속 한 켠에 영원히.
풀어버리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고, 금방이라도 연기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것 같아서..
그리고 영원히 다시 떠올리겠지. 2008년, 11월 27일의 정적을.
Comment List
2008/12/02 12:05
2008/12/02 19:46
2008/12/05 22:50
술 마시고(혹은 운동하고) 나서 베개에 귀 대고 옆으로 누워있으면 혈관으로 피가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으흐흐
2008/12/19 04:28
2008/12/05 22:52
하면 할수록 중독되는 것 같아 -_- ㅋㅋ
이제 또 1년 어떻게 기다리지 걱정이다
2008/12/07 20:42